한자 학습 사전

성(姓) 윤

2급

한자 기본 정보

부수
총획수
4획
육서
회의
급수·분류·코드
부수와 획수란?

부수는 사전에서 한자를 분류하고 찾는 기준이에요. 예를 들어 校(학교 교)는 木(나무 목) 부수에서 찾아요. 부수는 글자 안에서 모양이 달라지기도 해요. 人(사람 인)이 休(쉴 휴)에서는 왼쪽의 亻 모양으로 쓰이는 것처럼요. 획수는 한 글자를 쓰는 데 필요한 획의 수예요.

尹 (성(姓) 윤) - 2급 한자 일러스트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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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姓) 윤2급
尹 (성(姓) 윤) - 2급 한자 일러스트 카드

이 한자가 들어간 단어 (50)

표준 사전 107개 단어 · 단어 앞 72 / 단어 뒤 32

단어 풀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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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사전에서 더 보기 (107)
이윤(伊)

사전 뜻중국 은나라의 전설상의 인물. 이름난 재상으로 탕왕을 도와 하나라의 걸왕을 멸망시키고 선정을 베풀었다.

관윤자[과뉸자](關子)

사전 뜻중국 주나라의 철학자이며 관리였던 윤희(尹喜)가 지은 책. 중국의 사상(思想) 문헌으로 신선(神仙), 방술(方術)과 불교 교리를 혼합한 내용이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오늘날 전하는 것은 당나라의 두광정(杜光庭)이 쓴 위서(僞書)로 추정된다.

윤각(慤)

사전 뜻조선 중기의 무신(1665~1724). 자는 여성(汝誠). 함경남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중국 청나라 사신과 함께 백두산의 경계를 사정(査定)하여 백두산 남쪽의 지형을 그렸다. 신임사화 때에 장살(杖殺)되었다.

윤관(瓘)

사전 뜻고려 예종 때의 학자·장군(?~1111). 자는 동현(同玄). 본관은 파평(坡平). 어사대부·한림학사·이부상서 등을 지내고 예종 2년(1107)에 여진 정벌을 하고 구성(九城)을 쌓았다.

윤급(汲)

사전 뜻조선 영조 때의 서가(書家)(1697~1770). 자는 경유(景孺). 호는 근암(近菴). 영조의 탕평책을 반대하였으며, 필법과 그 체가 독특하여 윤상서체(尹尙書體)라고 칭하였다. 저서에 ≪근암집≫, ≪근암연행일기≫가 있다.

윤순(淳)

사전 뜻조선 영조 때의 문신·서예가(1680~1741). 자는 중화(仲和). 호는 백하(白下)·학음(鶴陰)·나계(蘿溪)·만옹(漫翁). 대제학 등을 거쳐 공조·예조 판서에 이르렀으며, 당대의 이름 높은 서예가로 중국 송나라의 미남궁체(米南宮體)를 터득하였다. 문집으로 ≪백하집≫이 있다.

단어·예문 44개 더 보기
윤엄[유넘](儼)

사전 뜻조선 중기의 문신·화가(1536~1581). 자는 사숙(思叔). 호는 송암(松巖·松庵). 호조 좌랑과 장수 현감을 지냈다. 서화에 뛰어났으며, 서화의 감식에도 일가견이 있어 당대 제일인자로 꼽혔다.

윤용[유뇽](愹)

사전 뜻조선 숙종·영조 때의 화가(1708~1740). 자는 군열(君悅). 호는 청고(靑皐). 할아버지·아버지에 이어 3대가 화가로 유명하며, 유작으로 가 전한다.

단어 구성 한자
성(姓) 윤2급근심할 용급수 외
윤인[유닌](訒)

사전 뜻조선 광해군 때의 문신(1555~1623). 자는 인지(訒之). 선조 34년(1601) 생원을 거쳐 문과에 급제하고 대사헌·대사간에 이르렀으며, 이각(李覺)·정조(鄭造) 등과 함께 폐모론(廢母論)을 주창하여 인목 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시켰다. 인조반정 때 사형되었다.

윤임[유님](任)

사전 뜻조선 중기의 문신(1487~1545). 자는 임지(任之). 장경 왕후의 오빠로, 대윤(大尹)의 거두였다. 무과에 급제하여 경주부윤에 올랐으며, 문정 왕후가 수렴청정할 때, 윤원형과 세력 다툼을 벌이다가 소윤(小尹) 윤원형 형제가 일으킨 을사사화로 아들 삼 형제와 함께 처형되었다. 선조 때 누명이 벗겨졌다.

윤진(軫)

사전 뜻조선 선조 때의 의병장(1548~1597). 자는 계방(季邦). 호는 율정(栗亭). 정유재란 때 장성(長城) 입암산성 수장(守將)에 임명되어 성을 사수하다가 전사하였다.

윤탁(倬)

사전 뜻조선 중종 때의 학자(1472~1534). 자는 명중(明仲). 호는 평와(平窩). 갑자사화와 기묘사화 때 화를 입었으나 풀려나와 대사성과 개성부 유수를 지냈다. 당시 새로 등장한 사림파의 거두로 심오한 학문과 연구로 대학자로 존경을 받았다.

윤회(淮)

사전 뜻조선 세종 때의 명신·학자(1380~1436). 자는 청경(淸卿). 호는 청향당(淸香堂). 세종 14년(1432) 예문관 제학으로 맹사성 등과 함께 ≪팔도지리지≫를 편찬하였으며, 대사성이 되어 사대문서(事大文書)를 감장(監掌)하였다. 뒤에 집현전에서 왕명으로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의 찬집을 맡았다.

윤백남[윤뱅남](白南)

사전 뜻소설가·극작가·연극 영화인(1888~1954). 본명은 교중(敎重). ≪매일신보≫ 편집장을 지냈고 백남 프로덕션을 창립하여 여러 편의 영화를 감독·제작하였으며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 소설 을 발표하였다. 작품에 , , 따위가 있다.

윤유[유뉴](游)

사전 뜻조선 영조 때의 문신(1674~1737). 자는 백숙(伯叔). 호는 만하(晩霞). 생원으로서 문과에 급제하여 옥당(玉堂)에 들어가 나라의 기강을 확립하는 데 힘쓰고 무관들의 민폐를 근절시켰다. 이조·형조·호조 판서를 지냈으며 글씨를 잘 썼다. ≪해동 가요≫에 시조 2수가 전한다.

윤거형(居衡)

사전 뜻조선 숙종 때의 학자(1654~1715). 자는 임중(壬重). 호는 송파(松坡). 구경(九經)·백가(百家)를 비롯하여 고금(古今)의 치란(治亂)·국도(國都)·인물(人物) 등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였으며, 유학에도 정통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에 주력하였다.

윤경남(景男)

사전 뜻조선 선조 때의 학자(1556~1614). 자는 여술(汝述). 호는 영호(瀯湖).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활약하였다.

윤곤강(崑崗)

사전 뜻시인(1911~1950). 본명은 붕원(朋遠). 경향파(傾向派) 시인으로 출발하여 고전에 관심을 가졌다. 동인지 ≪시학(詩學)≫을 주재하였으며, 시집으로 ≪대지(大地)≫, ≪만가(輓歌)≫, ≪피리≫, ≪살어리≫ 따위가 있다.

윤덕영[윤더경](德榮)

사전 뜻구한말의 문신(1873~1940). 국권 강탈 때, 시종원경(侍從院卿)으로서 순종(純宗)을 강요하여 조약 문서에 옥새를 찍게 하였다.

윤덕희[윤더키](德熙)

사전 뜻조선 후기의 화가(1685~1776). 자는 경백(敬伯). 호는 낙서(駱西)·연포(蓮圃)·연옹(蓮翁). 글씨와 그림에 능하였으며, 특히 말과 신선 등을 잘 그렸다. 작품으로 , 가 있다.

윤동규(東奎)

사전 뜻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1695~1773). 자는 유장(幼章). 호는 소남(邵南). 상위(象緯), 역법(曆法), 천문, 지리, 의학 등 실용 학문을 주장하였다. 여러 역사를 참고하여 자수(訾水)·열수(冽水)·패수(浿水)·대수(帶水)의 ≪사수변(四水辨)≫을 저술하였다.

윤동야(東野)

사전 뜻조선 정조 때의 학자(1757~1827). 자는 성교(聖郊). 호는 소심(小心)·현와(弦窩). ≪예기≫, ≪주역≫, ≪춘추≫ 등을 도해(圖解)하여 알기 쉽게 풀이하고, 여러 유학자의 문집에 나타나는 와전(訛傳)과 오기(誤記)를 바로잡았다. 저서로 ≪현와집≫이 전한다.

윤두서(斗緖)

사전 뜻조선 후기의 서화가(1668~1715).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 겸재(謙齋)·현재(玄齋)와 함께 조선의 삼재(三齋)라고 불릴 만큼 서화에 능하였다. 작품에 , , 따위가 있다.

윤두수(斗壽)

사전 뜻조선 선조 때의 문신(1533~1601). 자는 자앙(子仰). 호는 오음(梧陰). 문장이 뛰어났고, 글씨에도 문징명체(文徵明體)를 본떠 일가를 이루었다. 저서에 ≪연안지(延安志)≫, ≪평양지(平壤志)≫, ≪기자지(箕子志)≫ 따위가 있다.

윤보선(潽善)

사전 뜻정치가(1897~1990). 호는 해위(海葦). 1954년 3대 민의원으로 정계에 투신하여, 1960년 8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신한당 총재, 국민당 총재, 신민당 총재 등을 지냈다. 저서로 ≪구국(救國)의 가시밭길≫ 따위가 있다.

윤봉춘(逢春)

사전 뜻영화배우·영화감독(1902~1975). 한국 영화를 개척한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무성 영화 시대인 1927년부터 영화계에 종사하면서 , 따위의 많은 작품을 감독하였으며, 1963년 예총(藝總) 이사를 거쳐 예총 상임 고문을 역임하였다.

윤선거(宣擧)

사전 뜻조선 중기의 학자(1610~1669). 자는 길보(吉甫). 호는 미촌(美村)·노서(魯西)·산천재(山泉齋). 생원시와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노후에는 금산(錦山)에 은거하여 성리학에 힘써 그 이름이 알려졌다. 유계(兪棨)와 공편한 ≪가례원류≫는 그가 죽은 뒤 노소 당쟁의 불씨가 되었다. 저서로 ≪노서유고(魯西遺稿)≫, ≪계갑록(癸甲錄)≫ 따위가 있다.

윤선도(善道)

사전 뜻조선 중기의 문신·시조 작가(1587~1671).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해옹(海翁).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으나, 경사(經史)·의약·복서(卜筮)·음양지리에 해박하고, 특히 시조에 뛰어났다. 가사 문학의 대가인 정철과 더불어 시조 문학의 대가로서 국문학사상 쌍벽을 이루며, 특히 자연을 시로써 승화시킨 뛰어난 시인이었다. 문집 ≪고산유고≫에 시조 77수와 한시문 외에 2책의 가첩(歌帖)이 전한다. 작품으로 , , , , 따위가 있다.

윤용구[유뇽구](用求)

사전 뜻구한말의 문신(文臣)·서화가(1853~1939). 자는 주빈(周賓). 호는 석촌(石村)·해관(海觀)·장위산인(獐位山人). 예조 판서와 이조 판서를 지낸 뒤, 모든 관직을 사양하고 서울 근교의 장위산 밑에 은거하였다. 글씨와 그림에 모두 뛰어났으며, 특히 해서(楷書)·행서(行書)·금석문(金石文)을 많이 썼다.

윤원로[유눨로](元老)

사전 뜻조선 중기의 문신(?~1547). 윤원형의 형, 문정 왕후의 오빠로서 왕실의 외척 세력을 형성하며 지나친 세도를 부렸다. 명종 즉위 후 동생과 권세를 다투다가 파직·유배되어 처형당하였다.

윤원형[유눤형](元衡)

사전 뜻조선 중기의 문신(?~1565). 자는 언평(彦平). 문정 왕후의 동생. 명종 원년(1546)에 문정 왕후가 수렴청정할 때,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임 등을 죽이고 많은 인사를 몰아냈다. 뒤에 문정 왕후가 죽자 실각하여 관직을 빼앗기고 귀양 가서 죽었다.

윤일선[유닐썬](日善)

사전 뜻의학자·교육가(1896~1987). 호는 동호(東湖). 서울대 의대 교수·학장·총장을 지냈으며, 원자력 병원장·암 학회장·학술원 회원을 지냈다.

윤정기(廷琦)

사전 뜻조선 후기의 학자(1814~1879). 자는 경림(景林). 호는 방산(舫山). 외조부 정약용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경사(經史)에 밝았다. 정약용의 문장과 중국 송나라 미불(米芾)의 체(體)를 터득한 글씨로 유명하다. 저서에 ≪물명유고≫, ≪방산유고(舫山遺稿)≫ 따위가 있다.

윤정립[윤정닙](貞立)

사전 뜻조선 중기의 화가(1571~1627). 자는 강중(剛仲). 호는 학산(鶴山)·매헌(梅軒). 군수를 지냈으며 시문과 그림에 능하였다. 작품에 가 있다.

윤종의(宗儀)

사전 뜻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805~1886). 자는 사연(士淵). 호는 연재(淵齋). 공조 판서를 지냈고 제자백가에 정통하였으며 병법(兵法)과 농사, 천문 따위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특히 예학(禮學)에 밝았다. 저서에 ≪예기사문록(禮記思問錄)≫ 따위가 있다.

윤지교(智敎)

사전 뜻조선 숙종 때의 학자(1658~1716). 자는 숙정(叔正)·숙우(叔愚). 호는 숙야재(夙夜齋). 윤증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으며, 예서(禮書)에 치중한 연구를 하였다.

윤지완(趾完)

사전 뜻조선 숙종 때의 문신(1635~1718). 자는 숙린(叔麟). 호는 동산(東山). 현종 3년(1662) 증광 문과에 급제하고, 예조 판서와 병조 판서를 거친 다음 우의정을 지냈다. 청백리로 뽑혀 기록되고 숙종의 묘에 배향되었다.

윤지충(持忠)

사전 뜻조선 정조 때의 천주교인(1759~1791). 교명은 바오로. 정약용의 외사촌으로, 그의 가르침에 따라 천주교를 믿고 영세를 받았다. 정조 13년(1789) 베이징에 가서 견진 성사를 받고 귀국하여 어머니 장사 때 천주교 의식에 따라 초상을 치른 것이 죄가 되어 신해박해 때 처형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윤행임(行恁)

사전 뜻조선 정조 때의 문신(1762~1801). 자는 성보(聖甫). 호는 석재(碩齋). 시호는 문헌(文獻). 시파(時派)로 정조의 은총을 입어 20년간 지밀(至密)에서 왕명을 받들었으며, 정조가 죽은 뒤 이조 판서가 되었다. 척신들의 등용을 막다가 좌천되었으며, 시파를 제거하기 위하여 일으킨 신유박해 때에 투옥되어 죽었다. 헌종 때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윤현진(顯振)

사전 뜻독립운동가(1892~1921). 자는 명구(明九). 호는 우산(右山). 대동 청년당에 가담하여 구국 운동에 헌신하였다.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안희제 등과 부산에서 백산 상회를 경영하였으며 두 차례에 걸쳐 31만 2천 원을 상하이 임시 정부에 보냈다. 뒤에 상하이로 탈출하여 임시 정부 재무 차장이 되었다.

윤효중(孝重)

사전 뜻조각가(1917~1967). 호는 불재(弗齋). 일본 도쿄 미술 학교 조각과를 졸업하고 홍익 대학교 교수를 거쳐 국전(國展) 심사 위원과 한국 미술 협회 부이사장을 지냈다. 대표작으로는 , , , , 따위가 있다.

윤희구[윤히구](喜求)

사전 뜻구한말의 한문학자(1867~1926). 자는 주현(周賢). 호는 우당(于堂). 광무 1년(1897) 사례소(史禮所)에서 장지연과 함께 ≪대한예전(大韓禮典)≫을 편찬하고 ≪문헌비고(文獻備考)≫를 증수하였으며, 규장각에 들어가 ≪양조보감(兩朝寶鑑)≫을 지었다. 장지연, 오세창 등과 함께 ≪대동시선≫을 교열하였다. 저서에 ≪우당시문집≫이 있다.

고윤산(高山)

사전 뜻강원도 회양군과 통천군 사이에 있는 산. 높이는 1,225미터.

()

사전 뜻우리나라 성(姓)의 하나. 본관은 파평(坡平), 해남(海南), 칠원(漆原), 남원(南原) 등 40여 본이 현존한다.

단어 구성 한자
윤섬(暹)

사전 뜻조선 선조 때의 문신(1561~1592). 자는 여진(汝進). 호는 과재(果齋). 1587년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중국 명나라에 갔다가 이성계가 이인임의 후손이라는 잘못된 기사를 바로잡고, 1590년 광국 공신 2등이 되어 용성 부원군에 봉해졌다. 임진왜란 때 종사관으로 상주에 내려가 박호(朴箎)·이경류(李慶流)와 함께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윤심덕(心悳)

사전 뜻여성 성악가(1897~1926). 호는 수선(水仙). 일본 도쿄 음악 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돌아와 순회공연에 출연하여 성악가로 명성을 떨치고 토월회 등에서 배우로 활약하였다. 1925년에 대중가수로 전향하여 로 인기를 끌고, 일본에 레코드를 취입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연락선에서 애인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투신하여 정사(情死)하였다.

윤치호(致昊)

사전 뜻구한말의 정치가(1865~1945). 호는 좌옹(佐翁). 윤웅렬의 아들. 신사 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와서 개화 사상에 눈을 뜬 후 미국에 유학하였다. 서재필 등과 독립 협회를 조직하였으며, 국권 강탈 후 총독 암살 계획에 가담한 혐의로 6년 형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귀족원 의원을 지냈으며 광복 후 일본에 협력한 것을 자탄하다가 뇌일혈로 사망하였다.

윤극영[윤그경](克榮)

사전 뜻동요 작가(1903~1988). 일본 우에노(上野) 음악 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우리나라 동요와 동시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작품에 동요 , , 따위의 500여 곡과 동시 100여 편이 있다.

윤근수(根壽)

사전 뜻조선 선조 때의 문학자·공신(1537~1616). 자는 자고(子固). 호는 월정(月汀). 중국 명나라와의 외교를 담당하여 국난 극복에 힘썼으며, 이황의 제자로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특히 그는 영화(永和)의 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사용하였다. 저서에 ≪사서토석(四書吐釋)≫ 따위가 있다.

윤동주(東柱)

사전 뜻시인(1917~1945). 북간도에서 출생하였으며, 연희 전문학교를 거쳐 일본에 유학한 후 1943년에 독립운동의 혐의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광복 후 그의 유고를 모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발간되었다.

고전문헌 수록 구절 (천자문)

제 64구

磻溪伊佐時阿衡

반계이윤 좌시아형

반계(磻溪)의 강태공과 (주 문왕때) 신야의 이윤(伊)이 (상나라 탕왕때) 시대(時)를 돕고(佐) 아형(阿衡, 상나라 재상 칭호)을 맡았다.

구절 속 한자와 훈·음

한자를 누르면 뜻과 그림을 자세히 볼 수 있어요.

획순·쓰기 연습

획순 애니메이션 · 획순 퀴즈 · 자유 붓글씨

1/4획

재생 버튼(Space) 또는 단계 카드를 클릭하여 획순과 필맥을 관찰하세요.

재생 속도:
획순 진행 상황1 / 4획

키보드 단축키: Space 재생/정지 · / 1획 이동 · R 처음부터

단계별 획순 분해 갤러리 (총 4단계)

각 단계 카드를 클릭하면 상단 플레이어에서 해당 획을 집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붉은색: 해당 단계 추가 획검은색: 이전 완료 획
한자 획순의 7대 기본 원칙 (筆順七則)

한자는 무작위로 쓰는 것이 아니라 수천 년 서예의 역사 속에서 가장 균형 있고 빠른 속도로 쓰기 위한 7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1. 위에서 아래로 (上→下)

글자의 상단 획부터 하단 획 순서로 씁니다. (예: 三, 言, 昌)

2.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左→右)

좌측 편방을 먼저 쓰고 우측 방을 나중에 씁니다. (예: 川, 州, 順)

3. 가로획 먼저, 세로획 나중

가로와 세로가 교차할 때 가로획을 먼저 씁니다. (예: 十, 木, 土)

4. 가운데 먼저, 좌우 나중

좌우 대칭 구조일 때 중심 기둥을 먼저 세웁니다. (예: 小, 水, 永)

5. 바깥을 싸고 안을 채운 뒤 닫기

외곽 틀을 만들고 안쪽을 완성한 후 닫습니다. (예: 日, 四, 國)

6. 꿰뚫는 획은 마지막에

글자 중심을 세로로 관통하는 긴 획은 마지막에 씁니다. (예: 中, 事, 申)

7. 오른쪽 위의 점은 마지막에

글자 우측 상단의 점(點)은 글자의 끝맺음으로 씁니다. (예: 犬, 玉, 代)

💡 필순 완성 팁

위 원칙을 적용하며 상단 퀴즈 모드로 손 감각을 익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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