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성(姓) 윤
2급한자 기본 정보
- 부수
- 尸
- 총획수
- 4획
- 육서
- 회의
부수와 획수란?
부수는 사전에서 한자를 분류하고 찾는 기준이에요. 예를 들어 校(학교 교)는 木(나무 목) 부수에서 찾아요. 부수는 글자 안에서 모양이 달라지기도 해요. 人(사람 인)이 休(쉴 휴)에서는 왼쪽의 亻 모양으로 쓰이는 것처럼요. 획수는 한 글자를 쓰는 데 필요한 획의 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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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뜻중국 주나라의 철학자이며 관리였던 윤희(尹喜)가 지은 책. 중국의 사상(思想) 문헌으로 신선(神仙), 방술(方術)과 불교 교리를 혼합한 내용이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오늘날 전하는 것은 당나라의 두광정(杜光庭)이 쓴 위서(僞書)로 추정된다.
사전 뜻조선 중기의 무신(1665~1724). 자는 여성(汝誠). 함경남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중국 청나라 사신과 함께 백두산의 경계를 사정(査定)하여 백두산 남쪽의 지형을 그렸다. 신임사화 때에 장살(杖殺)되었다.
사전 뜻고려 예종 때의 학자·장군(?~1111). 자는 동현(同玄). 본관은 파평(坡平). 어사대부·한림학사·이부상서 등을 지내고 예종 2년(1107)에 여진 정벌을 하고 구성(九城)을 쌓았다.
사전 뜻조선 영조 때의 서가(書家)(1697~1770). 자는 경유(景孺). 호는 근암(近菴). 영조의 탕평책을 반대하였으며, 필법과 그 체가 독특하여 윤상서체(尹尙書體)라고 칭하였다. 저서에 ≪근암집≫, ≪근암연행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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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뜻조선 중기의 문신·화가(1536~1581). 자는 사숙(思叔). 호는 송암(松巖·松庵). 호조 좌랑과 장수 현감을 지냈다. 서화에 뛰어났으며, 서화의 감식에도 일가견이 있어 당대 제일인자로 꼽혔다.
사전 뜻조선 숙종·영조 때의 화가(1708~1740). 자는 군열(君悅). 호는 청고(靑皐). 할아버지·아버지에 이어 3대가 화가로 유명하며, 유작으로 가 전한다.
사전 뜻조선 광해군 때의 문신(1555~1623). 자는 인지(訒之). 선조 34년(1601) 생원을 거쳐 문과에 급제하고 대사헌·대사간에 이르렀으며, 이각(李覺)·정조(鄭造) 등과 함께 폐모론(廢母論)을 주창하여 인목 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시켰다. 인조반정 때 사형되었다.
사전 뜻조선 중기의 문신(1487~1545). 자는 임지(任之). 장경 왕후의 오빠로, 대윤(大尹)의 거두였다. 무과에 급제하여 경주부윤에 올랐으며, 문정 왕후가 수렴청정할 때, 윤원형과 세력 다툼을 벌이다가 소윤(小尹) 윤원형 형제가 일으킨 을사사화로 아들 삼 형제와 함께 처형되었다. 선조 때 누명이 벗겨졌다.
사전 뜻조선 선조 때의 의병장(1548~1597). 자는 계방(季邦). 호는 율정(栗亭). 정유재란 때 장성(長城) 입암산성 수장(守將)에 임명되어 성을 사수하다가 전사하였다.
사전 뜻조선 중종 때의 학자(1472~1534). 자는 명중(明仲). 호는 평와(平窩). 갑자사화와 기묘사화 때 화를 입었으나 풀려나와 대사성과 개성부 유수를 지냈다. 당시 새로 등장한 사림파의 거두로 심오한 학문과 연구로 대학자로 존경을 받았다.
사전 뜻조선 세종 때의 명신·학자(1380~1436). 자는 청경(淸卿). 호는 청향당(淸香堂). 세종 14년(1432) 예문관 제학으로 맹사성 등과 함께 ≪팔도지리지≫를 편찬하였으며, 대사성이 되어 사대문서(事大文書)를 감장(監掌)하였다. 뒤에 집현전에서 왕명으로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의 찬집을 맡았다.
사전 뜻소설가·극작가·연극 영화인(1888~1954). 본명은 교중(敎重). ≪매일신보≫ 편집장을 지냈고 백남 프로덕션을 창립하여 여러 편의 영화를 감독·제작하였으며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 소설 을 발표하였다. 작품에 , , 따위가 있다.
사전 뜻조선 영조 때의 문신(1674~1737). 자는 백숙(伯叔). 호는 만하(晩霞). 생원으로서 문과에 급제하여 옥당(玉堂)에 들어가 나라의 기강을 확립하는 데 힘쓰고 무관들의 민폐를 근절시켰다. 이조·형조·호조 판서를 지냈으며 글씨를 잘 썼다. ≪해동 가요≫에 시조 2수가 전한다.
사전 뜻조선 숙종 때의 학자(1654~1715). 자는 임중(壬重). 호는 송파(松坡). 구경(九經)·백가(百家)를 비롯하여 고금(古今)의 치란(治亂)·국도(國都)·인물(人物) 등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였으며, 유학에도 정통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에 주력하였다.
사전 뜻조선 선조 때의 학자(1556~1614). 자는 여술(汝述). 호는 영호(瀯湖).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활약하였다.
사전 뜻시인(1911~1950). 본명은 붕원(朋遠). 경향파(傾向派) 시인으로 출발하여 고전에 관심을 가졌다. 동인지 ≪시학(詩學)≫을 주재하였으며, 시집으로 ≪대지(大地)≫, ≪만가(輓歌)≫, ≪피리≫, ≪살어리≫ 따위가 있다.
사전 뜻구한말의 문신(1873~1940). 국권 강탈 때, 시종원경(侍從院卿)으로서 순종(純宗)을 강요하여 조약 문서에 옥새를 찍게 하였다.
사전 뜻조선 후기의 화가(1685~1776). 자는 경백(敬伯). 호는 낙서(駱西)·연포(蓮圃)·연옹(蓮翁). 글씨와 그림에 능하였으며, 특히 말과 신선 등을 잘 그렸다. 작품으로 , 가 있다.
사전 뜻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1695~1773). 자는 유장(幼章). 호는 소남(邵南). 상위(象緯), 역법(曆法), 천문, 지리, 의학 등 실용 학문을 주장하였다. 여러 역사를 참고하여 자수(訾水)·열수(冽水)·패수(浿水)·대수(帶水)의 ≪사수변(四水辨)≫을 저술하였다.
사전 뜻조선 정조 때의 학자(1757~1827). 자는 성교(聖郊). 호는 소심(小心)·현와(弦窩). ≪예기≫, ≪주역≫, ≪춘추≫ 등을 도해(圖解)하여 알기 쉽게 풀이하고, 여러 유학자의 문집에 나타나는 와전(訛傳)과 오기(誤記)를 바로잡았다. 저서로 ≪현와집≫이 전한다.
사전 뜻조선 후기의 서화가(1668~1715).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 겸재(謙齋)·현재(玄齋)와 함께 조선의 삼재(三齋)라고 불릴 만큼 서화에 능하였다. 작품에 , , 따위가 있다.
사전 뜻조선 선조 때의 문신(1533~1601). 자는 자앙(子仰). 호는 오음(梧陰). 문장이 뛰어났고, 글씨에도 문징명체(文徵明體)를 본떠 일가를 이루었다. 저서에 ≪연안지(延安志)≫, ≪평양지(平壤志)≫, ≪기자지(箕子志)≫ 따위가 있다.
사전 뜻정치가(1897~1990). 호는 해위(海葦). 1954년 3대 민의원으로 정계에 투신하여, 1960년 8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신한당 총재, 국민당 총재, 신민당 총재 등을 지냈다. 저서로 ≪구국(救國)의 가시밭길≫ 따위가 있다.
사전 뜻영화배우·영화감독(1902~1975). 한국 영화를 개척한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무성 영화 시대인 1927년부터 영화계에 종사하면서 , 따위의 많은 작품을 감독하였으며, 1963년 예총(藝總) 이사를 거쳐 예총 상임 고문을 역임하였다.
사전 뜻조선 중기의 학자(1610~1669). 자는 길보(吉甫). 호는 미촌(美村)·노서(魯西)·산천재(山泉齋). 생원시와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노후에는 금산(錦山)에 은거하여 성리학에 힘써 그 이름이 알려졌다. 유계(兪棨)와 공편한 ≪가례원류≫는 그가 죽은 뒤 노소 당쟁의 불씨가 되었다. 저서로 ≪노서유고(魯西遺稿)≫, ≪계갑록(癸甲錄)≫ 따위가 있다.
사전 뜻조선 중기의 문신·시조 작가(1587~1671).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해옹(海翁).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으나, 경사(經史)·의약·복서(卜筮)·음양지리에 해박하고, 특히 시조에 뛰어났다. 가사 문학의 대가인 정철과 더불어 시조 문학의 대가로서 국문학사상 쌍벽을 이루며, 특히 자연을 시로써 승화시킨 뛰어난 시인이었다. 문집 ≪고산유고≫에 시조 77수와 한시문 외에 2책의 가첩(歌帖)이 전한다. 작품으로 , , , , 따위가 있다.
사전 뜻구한말의 문신(文臣)·서화가(1853~1939). 자는 주빈(周賓). 호는 석촌(石村)·해관(海觀)·장위산인(獐位山人). 예조 판서와 이조 판서를 지낸 뒤, 모든 관직을 사양하고 서울 근교의 장위산 밑에 은거하였다. 글씨와 그림에 모두 뛰어났으며, 특히 해서(楷書)·행서(行書)·금석문(金石文)을 많이 썼다.
사전 뜻조선 중기의 문신(?~1547). 윤원형의 형, 문정 왕후의 오빠로서 왕실의 외척 세력을 형성하며 지나친 세도를 부렸다. 명종 즉위 후 동생과 권세를 다투다가 파직·유배되어 처형당하였다.
사전 뜻조선 중기의 문신(?~1565). 자는 언평(彦平). 문정 왕후의 동생. 명종 원년(1546)에 문정 왕후가 수렴청정할 때,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임 등을 죽이고 많은 인사를 몰아냈다. 뒤에 문정 왕후가 죽자 실각하여 관직을 빼앗기고 귀양 가서 죽었다.
사전 뜻의학자·교육가(1896~1987). 호는 동호(東湖). 서울대 의대 교수·학장·총장을 지냈으며, 원자력 병원장·암 학회장·학술원 회원을 지냈다.
사전 뜻조선 후기의 학자(1814~1879). 자는 경림(景林). 호는 방산(舫山). 외조부 정약용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경사(經史)에 밝았다. 정약용의 문장과 중국 송나라 미불(米芾)의 체(體)를 터득한 글씨로 유명하다. 저서에 ≪물명유고≫, ≪방산유고(舫山遺稿)≫ 따위가 있다.
사전 뜻조선 중기의 화가(1571~1627). 자는 강중(剛仲). 호는 학산(鶴山)·매헌(梅軒). 군수를 지냈으며 시문과 그림에 능하였다. 작품에 가 있다.
사전 뜻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805~1886). 자는 사연(士淵). 호는 연재(淵齋). 공조 판서를 지냈고 제자백가에 정통하였으며 병법(兵法)과 농사, 천문 따위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특히 예학(禮學)에 밝았다. 저서에 ≪예기사문록(禮記思問錄)≫ 따위가 있다.
사전 뜻조선 숙종 때의 학자(1658~1716). 자는 숙정(叔正)·숙우(叔愚). 호는 숙야재(夙夜齋). 윤증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으며, 예서(禮書)에 치중한 연구를 하였다.
사전 뜻조선 숙종 때의 문신(1635~1718). 자는 숙린(叔麟). 호는 동산(東山). 현종 3년(1662) 증광 문과에 급제하고, 예조 판서와 병조 판서를 거친 다음 우의정을 지냈다. 청백리로 뽑혀 기록되고 숙종의 묘에 배향되었다.
사전 뜻조선 정조 때의 천주교인(1759~1791). 교명은 바오로. 정약용의 외사촌으로, 그의 가르침에 따라 천주교를 믿고 영세를 받았다. 정조 13년(1789) 베이징에 가서 견진 성사를 받고 귀국하여 어머니 장사 때 천주교 의식에 따라 초상을 치른 것이 죄가 되어 신해박해 때 처형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사전 뜻조선 정조 때의 문신(1762~1801). 자는 성보(聖甫). 호는 석재(碩齋). 시호는 문헌(文獻). 시파(時派)로 정조의 은총을 입어 20년간 지밀(至密)에서 왕명을 받들었으며, 정조가 죽은 뒤 이조 판서가 되었다. 척신들의 등용을 막다가 좌천되었으며, 시파를 제거하기 위하여 일으킨 신유박해 때에 투옥되어 죽었다. 헌종 때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사전 뜻독립운동가(1892~1921). 자는 명구(明九). 호는 우산(右山). 대동 청년당에 가담하여 구국 운동에 헌신하였다.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안희제 등과 부산에서 백산 상회를 경영하였으며 두 차례에 걸쳐 31만 2천 원을 상하이 임시 정부에 보냈다. 뒤에 상하이로 탈출하여 임시 정부 재무 차장이 되었다.
사전 뜻조각가(1917~1967). 호는 불재(弗齋). 일본 도쿄 미술 학교 조각과를 졸업하고 홍익 대학교 교수를 거쳐 국전(國展) 심사 위원과 한국 미술 협회 부이사장을 지냈다. 대표작으로는 , , , , 따위가 있다.
사전 뜻구한말의 한문학자(1867~1926). 자는 주현(周賢). 호는 우당(于堂). 광무 1년(1897) 사례소(史禮所)에서 장지연과 함께 ≪대한예전(大韓禮典)≫을 편찬하고 ≪문헌비고(文獻備考)≫를 증수하였으며, 규장각에 들어가 ≪양조보감(兩朝寶鑑)≫을 지었다. 장지연, 오세창 등과 함께 ≪대동시선≫을 교열하였다. 저서에 ≪우당시문집≫이 있다.
사전 뜻우리나라 성(姓)의 하나. 본관은 파평(坡平), 해남(海南), 칠원(漆原), 남원(南原) 등 40여 본이 현존한다.
사전 뜻조선 선조 때의 문신(1561~1592). 자는 여진(汝進). 호는 과재(果齋). 1587년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중국 명나라에 갔다가 이성계가 이인임의 후손이라는 잘못된 기사를 바로잡고, 1590년 광국 공신 2등이 되어 용성 부원군에 봉해졌다. 임진왜란 때 종사관으로 상주에 내려가 박호(朴箎)·이경류(李慶流)와 함께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사전 뜻여성 성악가(1897~1926). 호는 수선(水仙). 일본 도쿄 음악 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돌아와 순회공연에 출연하여 성악가로 명성을 떨치고 토월회 등에서 배우로 활약하였다. 1925년에 대중가수로 전향하여 로 인기를 끌고, 일본에 레코드를 취입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연락선에서 애인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투신하여 정사(情死)하였다.
사전 뜻구한말의 정치가(1865~1945). 호는 좌옹(佐翁). 윤웅렬의 아들. 신사 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와서 개화 사상에 눈을 뜬 후 미국에 유학하였다. 서재필 등과 독립 협회를 조직하였으며, 국권 강탈 후 총독 암살 계획에 가담한 혐의로 6년 형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귀족원 의원을 지냈으며 광복 후 일본에 협력한 것을 자탄하다가 뇌일혈로 사망하였다.
사전 뜻동요 작가(1903~1988). 일본 우에노(上野) 음악 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우리나라 동요와 동시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작품에 동요 , , 따위의 500여 곡과 동시 100여 편이 있다.
사전 뜻조선 선조 때의 문학자·공신(1537~1616). 자는 자고(子固). 호는 월정(月汀). 중국 명나라와의 외교를 담당하여 국난 극복에 힘썼으며, 이황의 제자로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특히 그는 영화(永和)의 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사용하였다. 저서에 ≪사서토석(四書吐釋)≫ 따위가 있다.
고전문헌 수록 구절 (천자문)
제 64구磻溪伊尹佐時阿衡
반계이윤 좌시아형
반계(磻溪)의 강태공과 (주 문왕때) 신야의 이윤(伊尹)이 (상나라 탕왕때) 시대(時)를 돕고(佐) 아형(阿衡, 상나라 재상 칭호)을 맡았다.
구절 속 한자와 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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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순·쓰기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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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획순의 7대 기본 원칙 (筆順七則)
한자는 무작위로 쓰는 것이 아니라 수천 년 서예의 역사 속에서 가장 균형 있고 빠른 속도로 쓰기 위한 7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글자의 상단 획부터 하단 획 순서로 씁니다. (예: 三, 言, 昌)
좌측 편방을 먼저 쓰고 우측 방을 나중에 씁니다. (예: 川, 州, 順)
가로와 세로가 교차할 때 가로획을 먼저 씁니다. (예: 十, 木, 土)
좌우 대칭 구조일 때 중심 기둥을 먼저 세웁니다. (예: 小, 水, 永)
외곽 틀을 만들고 안쪽을 완성한 후 닫습니다. (예: 日, 四, 國)
글자 중심을 세로로 관통하는 긴 획은 마지막에 씁니다. (예: 中, 事, 申)
글자 우측 상단의 점(點)은 글자의 끝맺음으로 씁니다. (예: 犬, 玉, 代)
위 원칙을 적용하며 상단 퀴즈 모드로 손 감각을 익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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